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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는 왜 권성동같은 정치인만 있을까?

misha

25.09.09 18:38:54수정 25.09.09 21:28:35추천 29조회 5,002

강원도라는 지명자체가 

강릉과 원주의 앞글자를 따서 만들만큼

동대문 밖 첫고을이라는 강릉은 예로부터 

유서깊은 동네였습니다.

 

통일신라 말기에 왕권싸움으로 쫒겨난 

신라왕족의 후손인 최씨와 김씨가

오늘날까지 강릉을 좌지우지 하고있지만

원래 강릉의 지형은 강물이 흘러가

바다에서 만나는 순리를 역행한

강물과 바다가 싸워 만든 경포호를 비롯한 

석호가 많은 지역으로

지형상으로는 반역의 땅이었습니다.

 

강릉 초당출신인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반역죄로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였으며

1900년 초 설립된 초당의숙의 교사이었던

여운형 선생의 영향으로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최후의 인민위원회 조직이 마지막까지 남았던 지역이었으며

민간보급이 안되어 도토리로 생존하여 도토리부대라고 불리던 

오대산 빨치산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일본 천왕으로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인 백작작위를 받았던 

최준집(한나라당 차떼기사건 주범 전국회의원 최돈웅 조부)을 

비롯한 강릉최씨들이 일제강점기하에 강릉상고(현 강릉제일고)를 

설립하여 친일인재들을 양성하고

일제와 결탁한 강릉최씨 매판자본가들이 

강릉의 상권을 장악하였습니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강릉최씨의 사병으로 

서북청년단과 유사한 흑샤스단을 조직하여

인민위원회를 강릉최씨들이 자체진압 하였고 

최초로 반민특위 강원도지부를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 공격해 

요원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체포, 고문하였으며 

1949년 6월 6일 서울 본부 습격 사건과 함께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반민특위 활동을 사실상 와해시키고 

친일 세력의 재등장시키는데

강릉 최씨들이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 이승만 정권아래 승승장구하던 강릉최씨들은 

강릉상고를 통한 인재양성으로

박정희 유신정권 아래에서도 최각규와 같은 

관료출신 정치인을 내세워 기득권을 유지하였으며

강릉 최씨 종친회가 각종 공직선거 후보자를 결정한다는 

풍문이 돌만큼 강릉은 최씨들의 세상이었습니다.

 

강릉이라는 도시자체가 생산시설이 거의 없고

관광업과 교육사업으로 직접노동 보다 쉬운 돈벌이로 먹고살다보니

보수지향적인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강릉최씨라는 혈연과

친일매국세력이라는 오명을 덮으려 결사적으로 매달리는 색깔논쟁에서

늘 이겨왔기에 강릉의 정치인은 언제나 보수가 아닌 극우성향을 갖게 되었습니다.

 

서울의 소리 이명수기자에게 털렸던 김대남 전 행정관, 

시의원 하다가 느닷없이 시장하고 있는 헛소리 김홍규,

최돈웅 보좌관 출신 시사정치평론가 최수영(양양출생),

공무원합격의 명문 권성동 등이 강릉시민들을 대변한다는 정치인들 수준입니다.

 

강릉은 지금도 좌익세력을 때려잡고 나라의 안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이비종교같은 정치논리로 친일독재의 부끄럼을 열심히 감추어야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권성동이 강릉의 국회의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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