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이 될 사람은..
  
  
    블러드샤인
    06.08.25 11:12:50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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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남편이 될 사람은..
월급은 많지 않아도 너무 늦지않게 퇴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퇴근길에 동네 슈퍼 야채코너에서 
우연히 마주쳐 '핫~' 하고 웃으며 
저녁거리와 수박 한 통을 사들고 집까지 
같이 손잡고 걸어갈 수 있었음 좋겠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그 날 있었던 
열받는 사건이나 신나는 일들부터 
오늘 저녁엔 뭘 해 먹을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 하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들어와서 같이 후다닥 옷 갈아입고 손만 씻고, 
한 사람은 아침에 먹고 난 설겆이를 덜그럭덜그럭 하고 
또 한 사람은 쌀을 씻고 양파를 까고 
"배고파~" 해가며 찌게 간도 보는 
싱거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 먹고나선 둘 다 퍼져서 서로 설겆이를 미루며 
왜 니가 오늘은 설겆이를 해야하는지... 
서로 따지다가 결판이 안 나면 가위바위보로 
가끔은 일부러, 그러나 내가 모르게 져주는... 
너그러운 남자였으면 좋겠다. 
주말 저녁이면 늦게까지 TV 채널 싸움을 하다가 
오 밤중에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약간은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같이 비디오 빌리러 가다가 
포장마차를 발견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가 
떡볶이에 오뎅국물을 후룩후룩~ 
"너 더 먹어~" "나 배불러~" 해가며 게걸스레 먹고나서는 
비디오 빌리러 나온 것도 잊어버린 채 
도로 집으로 들어가는 
가끔은 나처럼 단순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땐 귀찮게 부지런하기도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요일 아침... 
아침잠에 쥐약인 나를 깨워 반바지 입혀서 
눈도 안 떠지는 나를 끌고 공원으로 조깅하러가는 
자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오는 길에 베스킨라빈스에 들러 
초코렛 무스나... 민트 초코나...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콘을 두 개 사들고 
"두 개 중에 너 뭐 먹을래?" 
묻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가끔씩 약해지기도 하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 아내와 둘이 동네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소주 따라놓고 앉아 
아직껏 품고있는 자기의 꿈 얘기라든지 
그리움 담김 어릴적 이야기라든지 
십 몇년을 같이 살면서도 몰랐던 
저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이젠 눈가에 주름잡힌 아내와 두런두런 나누는 그런 
소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던져버리지 않는 
고지식한 사람이었음 좋겠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가는 사람. 
술 자리가 이어지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할 줄 아는 사람. 
내가 그의 아내임을 의식하며 살 듯, 
그도 나의 남편임을 항상 마음에 세기며 사는 사람, 
내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